운빨로 디지스트 합격한 사람의 최후

길 가다가 찍어도 이 정도.. 봄에 캠퍼스가 진짜진짜 예쁘다!!

 

개강하고 벌써 2달이 지났다.

지금 생각해봐도 내가 어떻게 합격했는지 너무 신기하고 믿기지가 않는다.

왜냐하면 면접에서 너무너무x100 떨었기 때문..

어느 정도였냐면 면접 때 교수님이 “아이고.. 너무 긴장했네… 우리가 다 미안하네ㅎㅎㅎ” 하셨을 정도…

진짜 사시나무 떨 듯이 달달달 떨었다.

 

긴장해서 목소리도 잘 안 나오고, 대답도 어버버했던 거 같다.

전공 과목 중에서 A에 대해 설명해보라고 하셨는데 B에 대해서 설명하고

C와 D의 차이점을 물어보셨는데 엉뚱한 얘기만 하고..

한마디로 엉망진창이었다.

 

그래서 면접이 끝나자마자 처음 든 생각이 ‘아.. 망했다…’였다.

나는 당연히 떨어질 거라고 생각했다.

 

내가 여기 붙은 건 진짜 말그대로 행운이었다.

몇 년치 행운 다 몰아준 느낌…

 

종합대학(디지스트 사람들은 이렇게 부른다)에서 과기원에 와보니까

학업 수준이나 마음가짐 등등 엄청 다르다.

 

일단 사건사고가 종합대학에 비해 약한(?) 편이다.

인원수가 적어서인지, 공부에 진심인 사람들만 모여서인지 사건사고 빈도가 낮기도 하고

종합대학에 비하면 다이나믹한 편은 아니다.

에피소드 자체가 별로 없고 일상이 잔잔한 편인 거 같다.

뭐가 됐든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는 수준에서 벌어진다.

 

그리고 학업 면에서 특히 영어는 차이가 많이 난다.

나는 학부 4학년 때 영어회화 수업을 들었는데 원어민 교수님이었고,

수업 시간 동안에는 학생들끼리 영어로만 대화하는 방식이었다.

그때는 교환학생 경험이 있거나 외국에서 살다온 학생들이 2-3명 있는 정도였고

다른 학생들은 고만고만한 수준이었다.

 

그런데 여기는 영어는 다들 기본으로 한다.

해외대학에 몇 달 간 파견을 다녀온 선배들도 많고, 디지스트는 학부 때 DURA라고 해서 해외 연수를 보내준다.

그래서인지 다들 영어에는 그닥 꺼리낌이 없는 거 같다.

물론 예외도 있겠지만..ㅎㅎㅎ

 

수업도, 연구실 세미나도 전부 영어로 하는데 ‘가끔 나만 못 알아듣고 있는 건 아니겠지…?’ 하는 생각도 든다ㅋㅋ

 

그리고 많은 학생들이 박사과정이나, 나아가 포닥까지 염두에 둔다.

진로로 교수를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도 많고

‘연구자의 길(?)에 들어섰으니까 당연히 박사 정도는 따야지’ 하고 생각하기도 한다.

 

다른 선배들을 보면 학부부터 석박사통합과정까지 7-8년차인 선배들도 있고,

14학번으로 입학해서 벌써 학교 생활이 10년차인 선배도 있다.

나는 ‘연구’라는 것을 앞으로 5년, 6년을 할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해보면 아직은 잘 모르겠다.

내가 그렇게 끈기와 열정이 있는 사람일까? 하는 의구심도 든다.

 

뚜렷한 목표를 가지고 몇 년 간 시간과 노력을 들인다는 게 다들 정말 멋지고, 대단한 것 같다.

 

그리고 이건 당연히 케바케고, 성급한 일반화인 건 알지만

차분하고 조용조용한 성격들이 많다.

시끄럽고 산만한 사람들은 별로 없고,

찐찐 공대생들이 모여있어서 그런지 MBTI만 봐도 INTJ, ISTJ, ISTP가 많다.ㅋㅋㅋ

 

이건 우리 연구실만 그런 걸 수도 있지만

회식을 할 때도 부어라 마셔라 하기보다는 다같이 맛있는 저녁 먹으러 가는 느낌이다.

지금까지 회식을 2번 했는데 그동안 연태하이볼 딱 1잔 마셨다.

그것도 그냥 훠궈 먹으면서 맛이 궁금해서 시켜본 게 전부..

먹을 사람은 먹고, 안 먹는다고 해도 절대 강요는 안하는데

전체적으로 분위기가 취할 때까지 먹는 경우가 절대 없다.

다음날 일정도 있고, 아니면 다들 피곤해서 술을 더 먹을 힘이 없는 거 같기도..

 

벌써 8주차 학교에 다녀보니

이런저런 학교 문화나 분위기 등등 나름 적응을 잘 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나한텐 합격한 것 자체가 행운이라서

사실 뭐든 좋다. 아직 디뽕 게이지 MAX 상태임…ㅋㅋㅋ

(참고로 등록금도 없는데 매달 용돈도 줘서 월급을 디뽕이라고 부른다ㅋㅋㅋ)

 

학교 수준이나 연구 환경, 인프라도 좋고 시설이나 학생 지원도 진짜 빵빵하다.

학교 보안이나 조경 관리도 정말 공을 들이고 세심하게 신경쓴다.

캠퍼스나 기숙사에 24시간 상주하는 안전 관리 직원분들이 있고,

시설팀, 보안팀 직원분들도 진짜 많다. 항상 유니폼 입고 계셔서 뭔가 낯설고 신기하다.

‘인원수에 비해 보안팀이 왜 이렇게 많지?’ 생각한 적도 있다.

그리고 통합관제팀이나 다른 직원분들..?이 매일 정장을 입고 계셔서 몬가 삼엄해 보인다.

 

결론은 학교 진짜진짜 좋음…!